우리는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태 5,7

설립자

안토니오 가볼리 사제

(1888-1972)

안토니오 가볼리 사제(Don Antonio Cavoli, SDB)

1888년 8월 4일,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 싼 죠반니 인 마리냐노에서 태어난 가볼리 신부는 1901년 신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5년 군종신부로 자원하여 4년 7개월 동안 복무하였다. 전장에서 돌아온 후, 1920년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깨닫고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 1926년 일본에 최초로 파견되는 살레시오회 선교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일본에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살레시오회 총장이던 필립보 리날디 신부는 송별사에서 “선교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일한 수단은 애덕”임을 강조하였는데, 가볼리 신부는 선교단 전체의 방향에 따라 이를 선교활동의 지표로 삼았다. 이후 치마티 신부의 뒤를 이어 미야자키 성당의 주임신부로 12년 동안 재직하면서 빈곤자와 병자를 방문하였고, 1932년 살레시오회 선교사들이 미야자키에 최초로 설립한 구호원의 원장으로서 애덕사목을 펼쳐나갔다.

1933년에는 이 일을 위해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정신으로 봉사하는 아가씨들의 단체인 ‘사랑의 딸들(Figlie della Carità, 愛子會)’을 만들었는데, 자신의 장상인 빈첸시오 치마티 신부의 권고에 따라 이 단체를 토대로 1937년 설립된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를 위해 투신하였다. 가볼리 신부는 1972년 11월 22일 선종할 때까지 자신의 선교지인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한편, 1956년 한국을 시작으로 하여 남미, 유럽으로 선교수녀를 파견하였다. 가볼리 신부는 수도회의 탄생 동기요 사명으로 선포된 이 선교활동을 교회의 복음화 임무에 적극 참여하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의 사명으로 확인해 주었는데, “선교는 까리따스 수녀회의 사명이며, 나의 생명입니다.”라는 말이 이를 함축하여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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