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태 5,7

설립자

빈첸시오 치마티 사제

(1879-1965)

가경자 몬시뇰 빈첸시오 치마티 사제(Venerable Mons. Vincenzo Cimatti, SDB)

  • 1879년 7월 15일 이탈리아 파엔짜 출생
  • 1905년 3월 18일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사제 수품
  • 1926년 2월 8일 선교사로서 일본 도착 - 1934년 몬시뇰 서임
  • 1935년 미야자키와 오이타의 지목구장으로 임명
  • 1937년 8월 15일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설립
  • 1938년 1월 29일 살레시오 수도회 일본 관구장 임명
  • 1965년 10월 6일 선종(86세)
  • 1991년 12월 21일 가경자로 공포

치마티 사제는 1879년 이탈리아 파엔짜에서 태어났다. 당시 파엔짜는 도자기 예술과 직조산업으로 유럽에서 명성이 높아 이 도시 주변에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여섯 남매를 돌보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가난한 가운데서도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여섯 남매 가운데 형 세 명이 어린 나이에 죽고 세 남매가 자랐는데, 그 가운데 형 루이지가 살레시오 수도회 수사가 되어 페루에서 일생을 선교사로 살았고, 누나는 자비의 병원수녀회에 입회하여 살았으며, 1996년 5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이탈리아 로마냐 사람의 열정적 성격을 지녔지만 항상 영적 감각 안에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과 닮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늘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을 지녔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명령할 줄 몰랐고 언제든지 주변 사람들을 공감하고 지지해 주는 덕을 지녀 아이들부터 많은 사람이 언제나 그분 곁으로 모여들었다. 세 남매 모두 수도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어 어머니 로사 파시는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최소한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래서 치마티 신부는 늘 가난에 대한 연민이 남달랐고, 자신도 늘 가난한 삶을 살았는데 주위에서 그분의 가난한 삶에 대해 물으면 “나는 가난의 끝을 모릅니다” 하고 고백하곤 하였다. 평생 한 켤레의 신발만을 신으셨는데 그것도 누군가로부터 얻은 신발이었고, 본인에게 무척 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치마티 신부가 지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은 선교열로 이어졌는데 “가장 미천한 곳에 자신을 보내줄 것”을 장상에게 요청했고, 이 같은 신부의 열정은 선교사 파견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땅이라 불리던 “미야자키”에서 열매를 맺게 되었다. 또한 자연과학 박사이고 뛰어난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까지 겸비해 평생 동안 900여 곡을 작곡하였다. 일본에서 선교할 때 수많은 음악회를 통해서도 선교하였는데, 중국에 공연하러 갔다가 한국을 알게 되었고 신의주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또 일본의 냉대 속에서 음악은 사람들 마음속까지 사랑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통찰하고 음악 선교에도 주력하였다. 신부의 맑은 영혼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분의 자작곡 연주곡을 모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에서 『사랑의 씨앗』(생활성서사, 2005)이라는 음반을 제작하여 널리 전하였다. 특히 치마티 신부는 ‘온유와 겸손의 성인’으로 알려지는데 살레시오 수도회 일본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도 “나는 명령할 줄을 모르기에 관구장직을 수행할 수 없다”며 거절하기도 했고, 미야자키와 오이타의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에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주교복을 사양하였다.

신부의 성덕은 수도회 설립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함께 선교사로 파견된 가볼리 사제의 강점을 활용하여 하느님의 영감을 수행하도록 하고 치마티 신부는 가볼리 신부가 일할 수 있도록 장상으로서 온전히 신뢰하며 뒤에서 철저히 돕는 역할을 하였다. ‘온유와 겸손의 성인’ 치마티 신부는 선종 후 1977년 시복 시성을 위한 심의에서 시신이 썩지 않은 채 발견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1991년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가경자 빈첸시오 치마티 사제는 생전에 이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라고 불릴 만큼 ‘온유와 겸손의 덕’이 뛰어난 분이다. 특히 덕에 가까운 겸손을 지닌 신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섭리에 대한 신뢰가 탁월한 분이다. 그래서 일본에 파견되던 당시 시대적 상황 안에서 성령의 활동과 교회의 요청에 민감하게 순응하였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온유와 겸손,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완전한 신뢰로써 모든 일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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